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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나눔터/음악 노래 영상

리처드 용재 오닐에게 배우기

by Dream Planner 2013. 4. 3.


리처드 용재 오닐에게 배우기



삶 속에서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됩니다.


삶이 풍성해지고 살아있음이 감사한 순간입니다.


신의 존재와 우주의 섭리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생각만 해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열심히만 살 뿐이라는데, 


내게 그의 삶은 기적이고 감흥입니다.



리처드 용재 오닐에게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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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에서는 리처드 용재 오닐에 대해 이렇게 극찬합니다.


"황홀하다" — 런던타임즈

"1급 연주자다.  최고다" — 뉴욕타임즈

"벨벳 같은 감촉의 소리, 우아하다"  뉴욕타임즈

"기술적인면에서 티 하나 없이 깔끔하다" — LA타임즈

"지독하리만큼 대단한 거장"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용재 오닐의 어머니

그의 어머니는 7세 정도의 정신연령을 갖은 지적장애 장애인입니다.  한국전쟁 때 그녀의 나이는 4세, 전쟁 고아였던 그녀는 미국의 오닐씨 부부에게 입양되어 보살핌을 받게 됩니다.     

몇 년 전 인간극장에서 용재 오닐의 어머니를 대하는 사려깊은 행동과 따뜻한 마음가짐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어머니를 천성이 밝은 '햇살 같은 분'이라고 표현합니다.


용재 오닐의 아버지

어머니는 후천적 장애를 갖고 있었던 아버지를 만나 용재 오닐을 갖게 되었지만, 조부모가 그때 당시 주어진 상황에서 최고의 결정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떨어트려 놓는것이라 판단하여 용재 오닐은 조부모의 돌봄으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용재 오닐은 어른이 되어서 탐정을 고용하여 아버지를 찾았지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용재 오닐은 말합니다.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고.  

"안녕하세요?" 

"아버지 아들이예요"  

"제 연주를 들어보시겠어요?"


용재 오닐의 조부모

오닐씨 부부는 열병으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그들의 딸을 열심히 보살폈습니다.  평생 도움이 필요할 것이란 것을 알기에 어린 용재에게 나중엔 용재가 엄마를 돌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할머니는 김치를 만들어 주었고, 다섯 살 된 용재에게 바이올린 선물, 그 계기로 용재는 음악세계에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음악레슨을 위해 하루에 왕복 4시간, 거의 매일 10년간 할머니는 운전기사 노릇을 해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어린 용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보다, 어머니보다 손자인 용재를 가장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고 용재 오닐은 말합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어딘가에 함께 계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마냥 슬프지만도 않다며 미소를 짓습니다.   


나는 그들의 결정체

동양사람 하나 없는 미국의 어느 시골마을, 그곳에 살았을 어린 용재를 상상해 봅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온통 다른점 투성이였을 자신의 모습...  성장하면서 마주하게 된 받아들이기 쉽지만은 않았을 현실--장애인 엄마, 입양아, 사생아, 이방인...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집안환경, 교육비 마련은 장학금만이 유일한 방법.  작은 어깨에 놓여진 세상이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의 모습 어디에서도 어둠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상을 향한 불만이나 냉소같은 그런 차가움이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대체 이러한 용감함과 긍정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랍니까?  

어머니로부터는 밝고 명람함을, 할아버지로부터는 예술적 감각을, 할머니로부터는 진중함과 열심히 일하며 불평하지 않는 점을 배웠다고 환히 웃으며 말하는 용재 오닐.

어려움과 고난을 통해 더욱 맑고 영롱하게 빛이 나는 진주같은 사람이 바로 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              

화려한 스펙이 부각되는 요즘 세상, 용재 오닐의 스펙은 누구못지 않게 대단합니다.  오직 소수의 비올라 연주자에게만 주어진 에이버리 피셔 그랜트를 수상하였고, 그래미 노미네이트 2개 후보에 올랐었고, 대학때는 전액 장학금을 받았으며 쥴리아드 음대에서는 비올라 연주가로써는 처음으로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받았습니다.  런던 필하모닉,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모스코 쳄버오케스트라 등 세계적인 무대에서 저명한 뮤지션들과 협연하였고, 현재 UCLA에서 최연소 음대교수로 후배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의 네 장의 솔로앨범들은 판매고가 14만 장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눈 코 뜰새 없이 바쁠 이 사람, 작년엔 한국에서 스물 네명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초대하여 멘토로써 힐링 오케스트라를 만들기까지 하였습니다.  


용재 오닐, 그가 꿈 꾸는 것은

앙상블의 수석 비올리스트, 솔리스트 연주가, 최연소 교수, '명예로운 시민상' 수여자, 마라토너...  화려한 수식어들을 뒤로 하고 그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사람들과 음악을 통한 소통이라고 합니다.  그의 말들을 듣고 있으면 그가 바로 진정한 예술가이며 휴머니스트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 인간의 본질은 예술이라고 봅니다.  예술이야말로, 정치나 돈과는 무관한, 인간의 최고의 상태가 아닐까요.  아니, 그 보다도 한수 위인 것 같아요.  인간의 힘을 초월하니까요.  예술(art)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잖아요."


"아티스트는 자기 자신을 내주어야 합니다.  (예술을 통하여) 인간사에서 비춰지는 존재, 삶, 고통, 죽음 등 이 모든 것들을 주고 나누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나는 존경합니다.  그 일 자체가 훌륭할 뿐 아니라, 그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죠.  돈과 개인적 충족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돕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고난과 역경을 뚫고 그 이상으로 비상하여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어진 상황만큼만 꿈을 꾸는 것이 더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삶을 통해 보여줍니다.  아픔과 고독을 예술로 성화시켜 인류애를 나누어 줍니다.    

오늘 글을 쓰는 내내 너무 행복했습니다.  생각의 깊음과 마음의 넓음이 일상생활에서 비춰지는 리처드 용재 오닐에게서 많이 배운 날입니다.  그의 비올라 연주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